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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14 33일
  2. 2007/06/21 위험한 진화론, 위험한 과학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보니 팔꿈치와 무릎에 있던 두드러기들이 꿈처럼 사라져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릎에 잔뜩 솟아올라 벅벅 긁곤 했는데, 도대체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기름 덩어리 연고와 졸음 투성이 알약들이여, 안녕.

Henry Art Gallery를 가 보았다. 오늘 전시된 작품들은 별 볼일 없었던 듯. Michael Joo의 사진이 한 점 들어가 있었다. 20일에 시작하는 Kim Jones의 전시전은 볼 만 할 듯 했다. 하늘이 뻥 뚫려 있는 방이 인상적이었다. 시애틀에 와서 하늘을 제대로 감상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사방이 벽인 건물 안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하늘을 다시 바라보는구나. 미술관 옆에 산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울적할 때 마음을 쉴 장소를 하나 발견했으니 만족한다. 밤에는 들어갈 수 없겠지만. ...그 곳에 있는 이런 저런 홍보지들을 뒤적거리다 Seattle Lesbian & Gay Film Festival을 요즈음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후회하지 않아가 끼여 있는 건 이해하겠지만 왕의 남자까지 버젓이 올라와 있는 건 조금 당황스럽다. 인디 영화보다는 완성도가 높은 영화들만 상영하는 듯 하다.

Seattle에 도착한 날이 9/11이었으니 온 지 꽤나 오래되었다. 조금 평안해 지고 무언가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시간이 의미있게 흘러가는 것 같지가 않다. 멍청하게 컴퓨터 환경 설정이나 하다가 하루 날리고, 이틀 날리고, 요리하고 청소하다가 또 하루 날리고. 내 삶이 그림에서 낙서로 변해가는 것 같다. 하루 하루가 성의 없이 마구 뜯겨져 나가는 느낌. 요즘 그림도 성의 없고, 글도 성의 없고, 운동도 성의 없고, 삶도 성의 없다.

무언가 하나에 집중해서 하루 종일 달라 붙어 있을 꺼리가 필요하다.
2007/10/14 23:28 2007/10/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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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논리적인, 실은 논리적으로 보이는, 논쟁들은 그 근거들의 논리적 타당성을 따지기 이전에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다. 혈액형-성격 연관론을 믿는 사람들을 비판하려 했던 이유는 그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유연히 사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열등감과 질투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위의 종교 논쟁을 보고 잠깐이라도 진화론이 합당하다는 근거와 창조론이 합당하지 않다는 근거를 대려고 고민하였던 이유는 내가 기독교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못마땅함은, 그들의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성향에 기인한다고 내 스스로에게 합리화 시키고 있었지만, 실은 심적 안정과 행복을 (그들은 얻었는데) 나는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열등감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화론이 옳은지 창조론이 옳은지 학문적으로 개뿔도 흥미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화론은 감정적인 논쟁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에 "매우"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자주 인용되곤 한다. 멜서스의 인구론과 수많은 그 변형들은 실은 굶어죽는 빈민층들을 감싸기 귀찮아하는 상류층의 논리적 도구일 뿐이다. 뇌용량-지능 연관 학설은 여성과 흑인들이 열등하다는 것을 설득시키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진화의 가장 우수한 마지막 단계라고 오해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아메바보다 '모든 면에서'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결론 짓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일 뿐이다. 동성애가 유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은연중에 (자연소멸 법칙에 따라) 동성애가 '열등'한 형질이라고 주장하는 연구 결과도 실은 동성애를 혐오하는 작자들의 헛소리일 뿐이다. 당신은 대머리가 사막에서 사망할 확률이 대머리가 아닌 사람들의 사막에서의 사망률보다 10% 높다고 해서 대머리 형질을 가진 사람을 지구상에서 쓸어버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진화론이 일반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콘돔 사용법이나, 카드깡 사기 방지하는 법, 신용카드 관리하는 법들보다 결코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잘못 틀어박힌 진화론은 (당사자가 자신이 수많은 억지 주장에 쥐여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삶을 속박할 수 있기 때문에 교과 과정에서 이것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한다 (화학 시간에 굳이 폭탄 제조법을 알려 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만일 생물학자들이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만인들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교양이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진화론이 얼마나 위험한 속박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는지를 학생들에게 거듭 각인시켜 준 후에야 그것을 가르치기를 희망한다. 사실, 조금 더 억지를 써서, 이러한 교육이 진화론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과학 이론 전반에 대하여 실시되기를 바란다. 나는 상대성 이론을 들먹이며 문화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사회학자들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거든.

마지막으로, 이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던 작품 / 장소들을 언급하고 싶다 : * 후회하지않아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생명의 춤 * 문화를 넘어서 (에드워드 홀의 책들을 알려주신 황용하 선배께 감사를 드린다) * 인간에 대한 오해 * 작은 인간 * 천년바위

2007/06/21 09:18 2007/06/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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